◇최연호 (사)서수면사람들 이사장
ㅣ제3회 바다로 가는 쌀ㅣ
진성창에 볏섬을 내고 며칠이 지난 뒤, 임피 장터에 소문 하나가 굴러들어왔다.
“들었는가?”
“뭘?”
“새 현령이 온다잖여.”
“현령?”
“그래.”
끝순네는 새 현령보다 생선값이 더 급했다. 좌판에 놓인 생선 두 마리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말했다.
“현령이 오든 현령 할아비가 오든 생선값이나 좀 싸졌으면 좋겄구먼.”
생선 장수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현령이오? 나한테 왜 그려!”
“그려도 비싸잖여.”
“싫으면 사지 마!”
끝순네는 생선을 내려놓았다.
“안 사.”
장수가 당황했다.
“진짜 안 사?”
“안 산다니께.”
“그럼 한 푼 깎아줄 테니 가져가.”
끝순네가 씨익 웃었다.
“두 푼.”
“한 푼.”
“두 푼.”
“도둑년이 따로 없네.”
“그럼 안 사.”
“알았어! 두 푼!”
끝순네가 생선을 집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연화가 감탄했다.
“아주머니.”
“왜.”
“대단혀요.”
끝순네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 사는 데는 주먹보다 배짱이여.”
옆에 있던 물쇠 영감이 혀를 찼다.
“그 배짱 때문에 니가 시집을 또 못 가는 겨.”
끝순네가 생선을 번쩍 들었다.
“이걸로 한 대 맞아볼텨?”
물쇠 영감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농담도 못 허겄네.”
사람들이 웃었다.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떠들썩하던 장터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좌판과 길 가장자리로 물러섰다. 말을 탄 관리들이 나타났다.
연화가 까치발을 들었다.
“아부지.”
“조용히 혀.”
“어느 사람이 현령이에요?”
“저기 가운데.”
연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현령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안 무섭게 생겼는디.”
무진이 황급히 딸의 입을 막았다.
“입 다물어.”
연화는 아버지의 손을 밀어냈다. 물쇠 영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령 앞에서 그런 말 허다가 잡혀간다.”
“왜 잡혀가요?”
“높은 양반이니께.”
“얼마나 높은디요?”
물쇠 영감이 수염을 만졌다.
“그건 나도 모르제.”
“모르면서 왜 아는 척혀요?”
사람들이 웃었다. 물쇠 영감의 얼굴이 붉어졌다.
“요놈의 계집애가!”
연화는 얼른 무진의 뒤로 숨었다.
“근디 우리 임피는 왜 현령이 와요?”
물쇠 영감이 이번에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큰 고을이니께 그러겄지.”
“뭐가 큰디요?”
“땅이 넓잖여.”
“또요?”
“곡식도 많이 나고.”
“또요?”
“사람도 많고.”
“또?”
“아이고메!”
물쇠 영감이 소리쳤다.
“니가 현령보다 더 무섭다!”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당시 현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벼슬의 수령이 부임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크고 작은 고을에는 현감이 파견되었지만, 임피에는 그보다 격이 높은 현령이 부임했다. ‘고려사’에는 전주목이 관할하던 고을 가운데 현령관이 네 곳이었다고 전한다. 임피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임피의 들에서는 많은 곡식이 났고, 그 곡식은 진성창에 모였다. 창고를 채운 세곡은 배에 실려 강과 바다를 지나 나라의 수도 개경으로 올라갔다. 개경의 관청과 군대, 왕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피에 현령이 오는 까닭을 넓은 들과 쌀에서 찾았다. 나라가 이 고을의 땅과 물길, 그리고 진성창에 쌓이는 곡식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연화는 멀리 들판을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이었다. 강이 있었고, 창고가 있었으며, 그 창고로 수많은 쌀이 들어갔다.
“그럼 우리 임피가 중요한 고을이에요?”
무진이 말했다.
“그런갑다.”
“근디요.”
무진의 얼굴이 굳었다. 딸이 ‘근디요’라고 말하면 반드시 골치 아픈 질문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뭐냐.”
“땅이 중요하고 쌀이 중요해서 높은 현령까지 보내는 거라면요.”
연화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 쌀 키우는 사람도 중요한 사람 아닌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물쇠 영감도, 끝순네도, 무진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현령의 행렬이 장터를 지나갔다. 사람들은 허리를 숙였고, 연화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아이의 눈만은 들판을 향해 있었다.
나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땅. 나라가 필요로 하는 쌀. 그 쌀을 실어 나르는 창고와 배.
그렇다면 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가.
열두 살 연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도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훗날 서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는 모르면 물었고, 어른은 알아도 침묵했다고.
겨울이 지나고 바람에서 얼음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진성창 가까운 강가에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가을부터 창고에 보관돼 있던 곡식을 배에 싣는 날이었다. 짐꾼들은 볏섬을 어깨에 메고 널빤지 위를 쉴 새 없이 오갔다. 볏섬이 배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뱃사람들은 돛과 밧줄을 살폈다.
연화는 강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배를 올려다보았다.
“저게 다 떠요?”
“안 뜨면 배겠냐.”
말한 사람은 억쇠였다. 진성창과 물길을 오가는 뱃사람으로,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고 목소리는 천둥 같았다.
“아저씨는 배 타요?”
“그려.”
“무서워요?”
“하나도 안 무섭다.”
옆에 있던 뱃사람이 웃었다.
“거짓말 마라. 저번 풍랑 때 울었잖여.”
억쇠가 버럭 소리쳤다.
“바닷물이 눈에 들어간 겨!”
“바닷물이 눈에서 나오든디?”
“시끄러!”
연화가 웃었다.
“울었구먼.”
“안 울었어!”
억쇠가 밧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애들은 저리 가!”
그러나 연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개경까지 가요?”
“그려.”
“얼마나 걸려요?”
“바람이 알아서 헌다.”
“바람이 안 불면?”
“기다리고.”
“너무 세게 불면?”
억쇠의 손이 잠시 멈췄다.
“살아남아야제.”
연화는 웃음을 거뒀다.
“죽을 수도 있어요?”
억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사람은 밭에서도 죽고, 집에서도 죽고, 배에서도 죽는다.”
“근디 왜 배를 타요?”
억쇠가 연화를 바라보았다.
“먹고살라고.”
그러고는 되물었다.
“농부도 농사짓다가 죽을 수 있는디 왜 농사짓는 줄 알어?”
“먹고살라고.”
억쇠가 웃었다.
“그려.”
연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근디 우리가 키운 쌀은 왜 먹고살라고 떠나는 거예요?”
억쇠의 웃음이 멈췄다.
“그건 니 아부지한테 물어라.”
멀찍이 서 있던 무진이 소리쳤다.
“왜 나한테 넘겨!”
사람들이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연화는 강 쪽으로 길게 열린 물길을 바라보았다.
“이 강에는 옛날부터 배가 다녔어요?”
억쇠가 밧줄을 잡은 채 대답했다.
“물이 생긴 날부터 다녔겄지.”
“또 모르는 말로 넘긴다.”
연화가 입을 삐죽이자 물쇠 영감이 끼어들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저 물길로 당나라 군선이 올라갔다고 혀.”
“당나라가 여기에도 왔어요?”
“그건 누가 알겄냐. 백제 부여를 치러 금강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내려오는 겨.”
“그럼 포구의 쌀도 빼앗았대요?”
영감은 헛기침을 했다.
“큰 군대가 지나가면 물하고 곡식부터 찾는 법이제.”
“누가 봤대요?”
이번에는 억쇠가 웃었다.
“저 영감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 일을 다 본 것처럼 말혀.”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무진만 강물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그 옛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제. 근디 군대가 지나가면 백성이 먼저 쌀을 잃는다는 건 틀리지 않을 겨.”
연화는 더 묻지 않았다.
강은 곡식을 실어 나르는 길이었고, 때로는 군대가 들어오는 길이기도 했다. 물은 어느 편도 아니었지만, 물가에 사는 사람들은 늘 먼저 흔들렸다.
마침내 출항이 시작됐다. 밧줄이 풀리고 돛이 올라갔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자 검은 뱃머리가 잔잔하던 강물을 양쪽으로 갈랐다.
연화가 소리쳤다.
“억쇠 아저씨!”
배 위에 선 억쇠가 돌아보았다.
“왜!”
“안 죽고 와요!”
사람들이 웃었다. 억쇠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니가 시끄러워서라도 돌아온다!”
배가 멀어졌다. 한 척, 두 척. 곡식을 실은 배들이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연화는 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진이 물었다.
“뭘 그리 보냐?”
“쌀이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안 보일 때까지 가겄지.”
“아부지.”
“왜.”
“저 쌀은 우리를 기억할까요?”
무진이 딸을 바라보았다.
“쌀이 어찌 기억을 허냐.”
“그럼 강물은?”
“강물도 모르겄다.”
“배는?”
무진은 한숨을 쉬었다.
“왜 세상 모든 것이 너를 기억해야 허냐?”
연화가 말했다.
“우리는 저 쌀을 기억하잖여.”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배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쌀은 강을 따라갔고, 강은 바다를 향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연화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키운 쌀은 사람보다 먼저 먼 세상으로 가고 있었다.
그 쌀이 어디에 닿을지, 누구의 밥이 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강물만이 알고 있는 듯했다.
쌀이 떠나온 들판과 그 쌀을 키운 사람들의 이름을.
― 다음 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