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학계의 ‘큰 별’, ‘한국문학 거목’, ‘시대의 이야기꾼’ 등으로 불려져도 지나치지 않은 황석영(82) 작가를 지난 12일 월명동에 위치한 모 레스토랑에서 군산신문이 만났다.
본사는 지난 봄부터 몇 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여러 상황과 시의적으로 맞물려 이뤄지지 못했다.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반가웠다.
반면, 대한민국 문학계 거장을 만나려는 마음에 살짝 떨리기도 했다.
64년째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황석영 작가는 3년여 동안 군산에 머무르면서 최근 하제 팽나무를 모티브로 소설 ‘할매’를 출간해 빠르게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지난달에는 정부포상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이 황석영 작가에게 돌아갔다.
황 작가는 그동안 4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라 세계적으로도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다수의 수상경력도 갖고 있다.>

<황석영 작가의 최근 소설 ‘할매’는 군산 하제에 있는 600년 된 팽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조선 초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와 생명, 생태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부터 새의 배 속에 있던 씨앗이 서해 갯벌에 내려앉아 그 씨앗이 600년을 버틴 팽나무 ‘할매’로 자라난다는 이야기다. 즉, 우리 세계는 단절되지 않고 순환된다는 의미다.>
◇인터뷰를 제가 진행하려 왔는데 되려 제가 긴장돼 큰일입니다. 작년에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선생님 뵀었고 jtbc에 출연하신 모습도 지켜봤습니다. 티비에 나오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런가요?(웃음).
◇백발의 야위듯한 선생님은 담배를 옆에 두고 계셨다. 선생님 담배를 많이 피우시나 봐요? 건강에 해롭지 않으실까요?
보통 하루에 2갑 정도를 태우는데 이걸 피면 정신적으로 편하고 좋아요. 나도 서른 번쯤은 끊어 본 적은 있어요. 집사람에게 혼나기도 합니다...<웃음>
◇군산과는 혹시 다른 인연이 있으신가요? 군산에서 머무르시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군산지역이나 사람들에게서 받는 느낌은 어떠신가요?
젊었을 때 전주에 많이 갔었는데 옆 동네인 군산도 가보자 해서 주로 술 마시러 많이 왔었습니다. 서울은 워낙 술값도 비싸 전주나 군산 쪽은 술값도 싸고 안주도 많다 보니 오게 됐죠. 특히, 이재하‧이광훈 시인과 친해 함께 가끔 왔습니다.
군산은 타자의 도시같아요. 식민지 근대화를 하면서 일제가 만든 도시, 그래서 열려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해외에 사는 느낌이 있어요. 군산은 모던해요. 누가 관여도 안 하고 편안해요. 만나는 사람도 한정돼 있고 조용하고 편안합니다.
◇5년 만에 장편소설 ‘할매’를 출간하셨는데 먼저 축하드립니다. 벌써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소설부문 랭킹 3위를 달리고 계시던데...하제 팽나무가 소재로 등장하는 ‘할매’의 전체적 맥락 핵심은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라 하는데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또 팽나무가 주인공이 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으신 건 어떤걸까요?
이 책은 역사를 다룬 게 아닙니다. 하제 팽나무 수령이 600년 정도로 가늠하는데 이건 인간이 정한 시간, 즉 팽나무는 그걸 모르죠. 사람이 아닌 것들과 관계지은 것들을 소설로 써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군산에 와서 팽나무에 대한 얘기를 들었죠.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40여 년간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그분들이 군산에 계시면서 만남이 이뤄졌고 그즈음 팽나무와 ‘팽팽문화제’를 알게 됐어요.
함께 행사에 참여했고 새만금갯벌을 보호하는 환경운동가들과 팽나무에 얽힌 얘기들이 흥미로웠어요. 팽나무 앞에 가서 막걸리 4병을 나무에 붓고 팽나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나무 앞에서 약속했죠.
불교생태학에서도 사람뿐 아니라 세계와 우주, 생물들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순환되면서 계속 이어지는데 팽나무의 600년 시간이 자연스럽게 관계지어지는 우주관과 세계관을 담고 있어요.
특별히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팽나무가 주인공인 이런 책은 처음 써봤습니다. 문장을 다듬으면서 예술가로서 참 기뻤고 즐거웠습니다.
사실 ‘할매’는 작년에 집필이 끝날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재야시민단체에서 비상 시국회의를 원로들 30여 명이 모여 수시로 개최하고 중단됐죠.
그러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마무리했습니다. 간신히 올해는 넘기지 않게 됐죠.<웃음> 군산에 와서 첫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군산에 입성한 기념작품으로 신고식 한 셈이죠.<웃음>
◇1962년에 등단하셔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데 그동안 총 몇 권의 책을 써오셨나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으신지.
총 40여 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지나가면 잊어요. 이미 독자의 것이고 세상의 책이에요. 특별히 애정하는 책은 가장 최근의 책이 좋습니다. ‘할매’입니다.<웃음>
◇수상경력도 화려합니다. 특히, 2019년 맨부커상 후보에, ‘철도원 삼대’로 2024년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계신데...
수상경력은 많은데 상복은 없어요. 해외문학상은 10여 차례 최종 심의에 올라가 결국 떨어져요. 이상하게 타이밍도 안 맞고 어긋나요. 언젠가 주겠죠. 주면 좋고 안주면 말구요 <웃음>
◇올해 문화예술발전 유공 시상식에서 정부포상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하셨어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두 번 고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인연이 안 맞아 사양했어요. 그때만 해도 국가나 정부라는 게 자유로운 작가 입장에서 보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도 들었어요.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 또 거절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고 후배들도 권유하고. 계속 고사하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해질까 허락했어요<웃음>
◇선생님은 노벨문학상 단골후보로도 계속 거론되셨는데 노벨상은 서구주의라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다 들었어요.
난 비판적이에요. 그건 밖에서도 다 알고 있죠. 한강 작가가 받은 건 자랑스럽고 축하해 줬어요.
세계문학 의미가 뭐냐 그랬을 때 그동안 제국주의와 근대화로 세계패권을 누렸던 나라 중심의 문화가 선진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점이 못마땅해요.
그렇지 않은 무수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생활감정에 나온 문학도 서로 알려지고 교류해야 된다는 생각을 어려울 때, 70~80년대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때 이미 군사독재기간이었으니까 자유실천문인협의회라고 예술가 사상표현의 자유 의미로서 처음 연대를 시작하며 활동했어요.
제국주의와 다른 문명을 만들어나가자는 거에요. 세계가 미·중 패권경쟁구도인데 다각외교를 통해 정신‧문화적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비동맹운동이 필요해요. 그래서 과거 ‘AALA’와 연대를 재편성해 ‘KAALA’ 문화재단을 출범시켰어요.
◇지난 17일 공식출범한 ‘KAALA’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K는Korea와 Asia, Africa 그리고 Latin America를 포함해요. K(한국)가 앞에 있지만 AALA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가 참여해요.
군산은 단순한 항구도시가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호남평야의 쌀 수탈을 위해 전략적으로 설계한 식민지 근대역사가 살아있어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수많은 도시들도 제국주의 유산을 안고 있고 이런 공간의 기억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호명되고 있어요.
20세기 중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AALA)는 문화적 연대를 통해 탈식민세계의 공동 정체성을 추구해요.
이들은 로터스(LOTUS)문학상을 제정하고 제3세계 문학의 고유한 상상력과 민중적 현실을 세계에 알려 최근 이집트를 중심으로 Writers Union of AALA에 의해 복원되고 있어요.
이런 흐름과 구분하지만 연대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군산을 중심으로 KAALA Festival을 기획해요.
우리는 Korea With AALA라는 이름 아래 문학과 예술, 다큐멘터리 영화, 평화와 환경 실천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으로 전환해 재해석하고 21세기 새로운 문화적 남남협력(south-south solidarity)을 제안할 거에요.
◇그런 가치있는 일을 군산에서 하신다니 정말 영광이고 군산지역도 더없이 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가디언 트리 프라이즈’라는 상을 신설해 미술, 영화, 문학, 더 나아가 환경평화부문까지 시상할 예정이에요.
글로벌 사우스 나라 작가들을 군산에 초청해 행사를 개최하고 2년마다 비엔날레를 열어 정착시킬 예정입니다.
곧 이집트도 방문할 계획이에요.
◇선생님은 일제에 지배받고 있을 때 태어나시고 4.19시절 친구의 죽음을 코앞에서 경험하시고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두셨습니다. 또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시고 1989년 방북 이후 일본과 독일에서 망명생활에 시대적 환경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도 받으시고 많은 고뇌와 좌절, 아픔 등으로 선생님 삶이 녹록지 않으셨을텐데…그 모든 것들이 선생님 작품에 녹아있고 밑거름도 되셨을 듯 해요.
4.19시절 때 친구가 총에 맞았어요. 그 자리에서 그걸 보고 학교를 그만뒀어요. 교복이 피로 물들었어요. 시대가 그런 때였죠. 독재정권 등 대한민국에 그 시절 살던 국민들의 삶은 쉽지 않았죠.
프랑스 선배 작가 등과 대담할 때 서사가 많은 나라에 살았던 네가 진심섞인 말로 부럽다고 했어요. 우여곡절이 많은 동시대 삶을 다룬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특권을 가진 거죠. 한국문학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활동 하시면서 아쉬운 점, 또 앞으로 이루고 싶으신 꿈이 있으시다면?
일반사람으로서 보면 망명하고 돌아다니고 감옥에 가고 사실 고비가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사생활 변화가 많았고 어느 누가 버티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자연인 황석영으로서는 그다지 행복하고 평탄한 삶이 아니었죠. 작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너무 안타깝게도 우리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오로지 대학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또 내 옆자리 친구를 팔꿈치로 밀어 경쟁해서 승리해야 되는 구조 시스템 때문에 한국문학이나 세계문학, 고전 등 주옥같은 필독도서들이 정말 많은데 접하지 못하고 되려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 부모나 선생님들은 너 뭐하냐 공부해야지라고 핀잔듣는 그런 교육풍토가 조성돼 있어 너무 안타까운데 선생님 어떠신가요?
독자들도 한국문학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야합니다. 그걸 세계에서 발견해요. 이미 오래전 그 수준에 와 있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온 거예요.
그동안 큰 나라에 가려져 눈에 안 띄었을 뿐이었지 문화정신적 수준은 이미 있었죠..우리 스스로 폄훼하고 오히려 밖에서 세계인들이 대단한 문화적 수준이라고 인정하죠. 저력은 이미 있었던 거죠.
책을 안 읽어서 문제에요. 책을 읽히면 됩니다. 그러면 인문적 소양이 생기고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보게 되죠. 논술이라든가 책 읽기를 권장해야 합니다.
도서관을 짓는데 입시제도속에서 제 쓰임새로 활용을 못하고 있어요.
AI 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해요. 자기콘텐츠가 없으면 질문의 수준이 낮아 챗GPT도 그 수준으로 답해요. 자기콘텐츠를 습득해야 하고 인문학적 바탕과 고전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활용도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서구사회를 보면 그걸 이미 예상해 논술을 강조하고 고전교육을 강화시키고 있죠..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세계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돼요. 점점 소외될 수 있어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또 군산지역 젊은 청년들에게 혹시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어느 세대를 갈라서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새대 특성들은 있죠. 특히, 20~30대들은 자기시대 특성을 갖고 있죠. 윤석열 계엄포고령 이후 빛의 혁명을 위해 매서운 한파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 응원봉과 은박지를 뒤집어 쓰고(이른바 키세스 시위대) 민주화를 외쳤던 젊은이들에 대해 감명받았어요.
특히 여성이 보여준 힘, 책임감, 음습하고 어두운 힘이 아니라 밝고 낙관적이고 절대 뒤로 밀리거나 주저하지 않는 걸 직접 목도했는데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회 내부에 그런 저력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역사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봅니다.
◇선생님 작년에 해외에 계실 때 다리를 다치셔서 불편하시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한쪽 눈도 좀 안 좋다 들었어요...그럼에도 작가로서 뼛속까지 식지 않은 열정과 사명이 남다르신 듯한데 작품활동은 언제까지 하실건지요? 다음 작품 기대해도 되죠?
작품에 대한 열정은 몸이 불편한 것과 상관없어요. 죽을 때까지 쓸겁니다.
기운이 남아있을 때까지 앉아서 버틸 힘만 있으면 계속할 겁니다.
또 어린이 민담집 30권짜리를 완성해야 합니다. 군산에 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10권 더 써야 합니다.
이외에도 쓰고 싶은게 많아요. 늘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노인사망의 60%가 골절이라는데 조심해야죠. 눈 오는 날엔 아예 집밖에 안 나올 겁니다. <웃음>
◇끝으로 군산시민과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할매’ 열심히 읽어주세요...<웃음>
황석영 작가는 일제치하인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고교 재학시절 단편소설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며 등단했고 1970년 단편소설 ‘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본격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그곳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만나 노동현장 경험도 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때 집필한 단편소설이 ‘탑’이다. 1989년엔 방북해 귀국하지 못했고 베를린예술원 초청작가로
독일에서 생활하다 1993년 귀국 후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김대중 특사로 1998년 석방됐다.
또한, 1989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 몰락 후 변혁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손님’ ‘오래된 정원’ ‘심청, 연꽃의 길’이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고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와 스웨덴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해질 무렵’은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철도원 삼대’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