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순간,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시 <기도>를 새삼스럽게 생각하다. “주여,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소서/목숨을 향하여 이렇듯 보채 임으로 굽어보소서/우리는 모두가 상승하고자 합니다. 광명처럼 노래처럼…”
평범한 행복의 소중함이 못내 가슴에 저미어 오는 이 시간 하늘이시여, 부디 백제 터 군산 땅 위에 청복(淸福)을 내려주시옵소서! 옥토를 지키며 나라의 일용할 양식을 생산해 온 터에 우린 그리 잘 살지는 못했어도 사람 중시의 인심 좋은 고향 금강과 <월명산>이 아름다운 군산 땅에 축복 주소서…,
물려받은 옥토와 강산을 지켜내며 근대 산업화엔 좀 뒤 쳐지었으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이 땅에서 오늘 계절의 여왕인 마지막 끝자락 봄이 끝나는 풍광 길에 홀로 나선 구불길 산야와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망해산’ 산행을 시작하네요.
망해산 풍경에 걷는 길이 마냥 즐겁다. 바로 내려다보이는 김제 평야, 좌측 열 시 방향으로 익산시가 아스라이 보이고 ‘황등’에 이어 ‘부여’ 땅과의 경계선을 내려다보면서 화려했던 백제의 옛터 호남의 원류를 음미해 보고 있습니다.
한 때, 옛 선인들은 전라도 땅을 이끼 낀 풍진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화려했던 이 땅을 칭하여 풍전세류(風前細柳)라 하며, <황등>의 ‘황등’제, 부안<고부>의 ‘눌’제, <김제>의 벽골제 셋의 호수 유역을 호서 지방 또는 호남지방이라 부른 나라의 큰 뜰인 곡창 지대이었다.
상세히 더 살펴보니 농본국 당시의 호 영남이란 원류는 산업사회에선 영호남이라 회자 되는 관습들은 망각의 세월을 탄 사념의 허상에 잠시 젖어보려니, 동시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대비적인 속성이었다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부질없는 기호 속에 떠도는 동시대에선 한낱 무의미한 상형문자의 껍질들이 떠다니는 깊은 의문의 기존 현상들이 지역주의의 오랜 악습과 동서갈등이 빚어낸 기타의 지역사회 문제는 깨끗이 씻어내어야만 하리라.
고대사에서 본 나당 연합군의 백제 초토화로 BC 7세기 망국민의 망명과 피란으로 일본에 귀화 현상에서 일탈 된 어떠한 상처도 치유하리란 확신에서 올바른 이해 틀 ‘안’에서 본 ‘내부 사람: 인사이더’로서의 편견과 아집 및 몰이해로의 앙금들이 말끔히 털어내고 가야 함에서이겠습니다.
원컨대 영호남 땅, 호영남 땅의 언어적 감각을 초월한 하나의 우리 땅으로서 민족 산하인 동해(낙동강)와 서해(한강과 금강)로 이어진 영겁 속에 우리 민족의 그리운 대상으로서 미래 후손들에게 계승되기를 빌며 옛 백제 터 군산 땅에서 월명산을 멍하게 또 바라봅니다.
헌데, 어느 사백님, 인형께선 내 우거(寓居) 대학로 산 방에 자리 잡은 3층 서재에서 바라본 푸른 월명산엔 영혼을 태동케 하는 비의(秘義)가 감추어져 있어, 외로운 영혼과 마주침에서 영적인 물길이 유지되었음에 더하여 장엄함이 인다는 소회를 토로하고 있었답니다.
아~아! 그렇게 고향 영(靈)산은 바라다봄으로부터의 눈뜸이 하나의 각성으로 이어지며 결국 다른 눈뜸의 또 다른 차연(差延)으로서 영적 소통들은 마치 선(禪)의 깊이와 헤아림으로서의 자연의 공간 월명산(月明山)을 재확인케 되었습니다!.
아뿔싸, 무위자연을 구가한 장자의 말이 또 생각되네요. 정말 싹이 돋게 하려거든, “그만두어라, 그냥 두어라(己乎, 己乎)”를 떠올리고 보니, 정작 흠집투성이 우리에겐 진화 신화의 인내천(人乃天)의 표어<기서호(其恕乎)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내게 싫은 것, 남에게 하게 하지 말지어다>가 될 면학가(勉學歌)를 되새겨 보고 있으려니 그 기쁨 또한 배가되네요.
아!, 이제 <월명산>의 시작(詩作)으로 다시 되새겨 본, 고향 강산의 예찬 속에 사람 중시의 ‘인내천’을 솔선해 온 <군산> 땅에서 살아오며, ‘논 전답’ 낙토와 고향 강산을 지킨 행복의 진수 그 축복들이 아주 충만하답니다. 오롯한 <월명산>의 다채로운 치유의 은혜 속에….
<월명산/산 서쪽과 동쪽 사이로/잎에 물기 오르고 있다/서로 살갑게 인사를 한다/ 햇빛 닿는/ 곳/잎은 더 푸르러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깊게 속삭이는 /월명산/이곳/월명(月明)산은/푸른 산이 힘이 되어/천년의 응시로 선/비의(秘義)는/이제/요렇게/마음속에/물길 솟구치게 한/천지인(天地人)의 땅, 영혼의 영산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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