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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작가 채만식의 데뷔작 ‘세 길로’

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전북문인협회 회원)

군산신문2026-02-09 09:46:05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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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전북문인협회 회원)


2018년 수송동 새들공원 옹벽에 군산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인물사진, 생애, 작품을 소개하는 일명 ‘군산 문인의 거리’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백릉 채만식 첫머리 부분부터 오류가 엿보였다. 

 

채만식이 1924년(22세) 이광수에 의하여 조선문단에 단편으로 추천된 데뷔작 ‘세 길로’가 ‘새길로’로 잘못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고쳐지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7년이 다 가도록 그대로였다. 옹벽 옆을 지날 때마다 자꾸 눈에 거슬리는 건 나 혼자만의 일이었을까?

 

백릉 채만식 관련 오류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보다 10여 년 전에 군산문인협회에서 발간한 ‘군산문학 제13집(1997.7.20.)’ 특집(채만식의 생애와 문학)에서 모 시인의 오류가 있었다.

 

남의 집에서 식사할 때는 수저를 닦아 먹을 정도로 결벽증이 있었던 선친 채만식의 성격을 아는 아들 채계열은 ‘…소생의 선고(先考)의 ‘연보’가 협회지의 부록으로 실려서 많은 분들의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특정 작가의 작가론이나 그 문학론을 쓸 때에는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해야만 될 줄 압니다’라고 따끔한 지적을 했었다

 

그때 모 시인은 그가 쓴 논단에서 채만식이 태어난 곳을 ‘동상(東上)마을’이 아닌‘동토(東土)마을이라 했고 ‘모친 조우섭(趙又燮)이 아닌 ‘모친 趙双燮(조쌍섭) 이라 했다. ‘집 나이 9세’라고 해야할 것을 ‘집 나이 13세’라 했다.

 

‘함라에 있는 신부댁 입구에 있는 방죽에 이르러 난데없이 돌풍이 불어와 가마 뚜껑이 날아가’…‘이는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풍설에 지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라고 하면서 그는 이것은 사실과 다르며 풍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 채계열의 지적으로는 함라의 신부댁 입구에는 방죽이 없었고, 그 당시 방죽이라면 임피에서 함라로 가는 중간쯤에 ‘황등리 방죽’이라고 하는 큰 못이 있었기에 이를 가르키는 것이었다.

 

또한 가마 뚜껑이 날아갔다는 말은 풍설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채만식의 제자인 장영창(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 출신) 시인이 6회에 걸쳐 신여원에 연재했던 ‘작가 채만식 선생을 회고한다’ 수기(1972년 7월호 218쪽)를 보면 ‘가마의 뚜껑이 날아가서 채만식이 불길한 것을 예감했다’는 술회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모 시인의 말처럼 꾸며서 쓴 풍설이 아니었다.

 

연이어 지적하자면 그가 쓴 글 46쪽 마지막 행중 ‘새길로’는 ‘세 길로’가 맞다. 새로운 길이 아니라 세 갈래길 ‘세 길로’이다.

 

그가 쓴 글 47쪽 7행중 ‘그의 형(潗植;집식)이’는 ‘그의 형(準植)이’가 옳다. 그가 쓴 글 47쪽 16행중 ‘중형인 潗植(집식)의’는 ‘중형인 준식(準植)의’가 옳다. 그가 쓴 글 48쪽 5행중 ‘百菱(백릉)’은 ‘白菱

(백릉)’이 옳다.

 

전체 작품편수를 알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참고로 창작과 비평사에서 전10권으로 간행(1987-1989)된 전집에는 소설 88편, 희곡 27편, 수필 77편, 기타 153편 등 모두 345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가 쓴 글 48쪽 15행중 ‘소망(小妄)’은 ‘소망(少妄)’이 옳다. 그가 쓴 글 49쪽 5행 중 ‘새길로’와 ‘생명의 유리’는 ‘세 길로’와 ‘생명의 유희’가 옳다. 그가 쓴 글 49쪽 18행중 ‘사호얼단’은 ‘사호일단(四號一段)’이 옳다. 

 

<외부칼럼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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