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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금만평야(金萬平野)의 자부심으로 ‘새만금광역시’를 지향하자

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임피향토사연구회 대표)

군산신문2026-03-20 15:40:37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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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임피향토사연구회 대표)


오늘날 우리 전북의 심장부인 새만금을 둘러싼 현실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선조들이 천 년을 일궈온 비옥한 터전을 눈앞에 두고 지자체 간의 관할권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치닫더니, 이제는 역사적 정통성 마저 무시한 행정통합 논의로 민심이 분열하고 있다. 

 

최근 김제시의회에서 제기한 전주와의 통합 논의를 보며, 필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위기감을 느낀다. 

 

과거 임피현, 옥구현과 만경현이 인접하여 이뤘던 드넓은 들녘을 선조들은 ‘금만평야(金萬平野)’라 불렀다. 

 

이제 ‘금만평야’는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땅에서 새만금으로 재탄성되었고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로 로봇·수소·AI 산업단지로 비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앞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기만 하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의 하류 도시에 불과했던 이들 지자체들은 2010년 새만금 방조제 준공 후 이제까지 매립지와 기반시설의 관할권을 놓고 싸우기만 했다. 

 

그 이유는 새만금신항의 항만물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더니 선거철이 돌아오자 최근 김제시의회에서는 전주시와 통합을 논의하여 도민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금만평야’의 역사를 잊었는가. 김제(金堤)와 만경(萬頃)의 이름이 합쳐진 그 명칭 안에 이미 군산과 김제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로서 역사적 지정학적 정통성이 깃들어 있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 역시 새로운 ‘만경·김제 평야’를 개척한다는 뜻이 아니었던가. 그 이름의 주인인 우리가 왜 정작 그 정통성을 도외시한 채 밖으로 눈을 돌리려 하는가. 

 

강물은 하류에서 다투지 않고 하나로 만난다. 군산, 김제, 익산, 부안은 각각 떨어진 점의 도시가 아니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라는 세 줄기 젖줄이 이 하류 도시로 흐르고 흘러 서해의 끝자락에서 하나로 만나 생명의 터전을 이뤘다. 

 

지자체 간에 인위적인 선으로 나누기 전에, 우리는 같은 강물을 마시고 같은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만백성(萬百姓)들 이었다. 

 

세 강이 만나는 새만금에서 지자체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지정학적 순리이다. 

 

전주에서 새만금까지 걸리는 시간이 불과 15분 거리라 하여 김제가 전주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행정통합의 원칙에는 반드시 역사적 맥락과 지정학적 정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멸 도시의 위기 속에 ‘새만금광역시’가 화답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지방 소멸의 파고 앞에 각자도생은 필패의 길임을 왜 모르는가? 

 

이제는 하찮은 기득권 다툼을 내려놓고, 군산, 익산, 김제, 부안를 아우르는 ‘새만금광역시’로의 대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차원이 아니다. 잃어버린 ‘금만평야’를 현대적 메가시티로 부활시켜 후세에 자랑스럽게 물려줄 유산을 만드는 일이 중앙정부에 주는 화답이다. 

 

눈앞의 실리보다 다가오는 새로운 백 년 뒤에 펼쳐질 새 역사를 바라보라. 

 

우주에서 내려다보이는 새만금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우리는 하나로 서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을 지켜온 선조들에 대한 예우이며, 고향을 지키며 살아갈 후세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준엄한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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