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임피향토사연구회 대표)
역사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군산을 ‘역전의 명수’ 야구의 도시로 기억하지만, 그 불굴의 투혼 뒤에는 76년 전 보스턴 벌판을 호령했던 한 마라토너의 숨결이 깊게 새겨져 있다.
바로 서흥남동 출신의 세계적 건각, 송길윤 선수다.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0년 4월 19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세 청년들이 미 대륙 보스턴마라톤대회를 뒤흔들었다.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그들은 나란히 1, 2, 3위를 휩쓸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김영랑 시인은 이 벅찬 감격을 두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렁차게 울려난다’며 장한 세계 제패를 노래했다.
그 영광의 주역 중 2위를 차지하며 민족의 기개를 드높인 이가 바로 우리 고장 군산의 아들이었다.
송길윤은 군산 서흥남동 357번지, 일명 팔마산 산줄기 끝자락 ‘흙구덩이’라 불리던 척박한 땅에서 꿈을 키웠다.
공동우물에서 물지게를 나르던 소년은 사립 양영학교와 군산상업학교를 거치며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성장했다.
그를 키운 것은 고향의 맑은 물과 군산 상공인들의 끈질긴 지원이었다.
필자는 최근 송길윤 선수의 흔적을 추적하며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마주했다.
보스턴 제패 후 귀국한 송길윤이 고향 군산에서 부모 형제를 태우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던 그때는 1950년 6월 중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열흘 전의 일이었다.
환희의 함성이 포연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군산시민들이 영웅에게 보냈던 마지막 박수소리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세계를 제패했던 송길윤의 투혼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그 위대한 정신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옥구읍 상평리 남산마을에서 발원하여 임병찬 의병장의 독립정신이 시작되었다면, 광복 후 군산의 자부심을 세계에 알린 것은 송길윤의 발자취였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준우승 직후 그의 아버지 송필호씨는 언론과의 대담에서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뜀박질을 즐겼다”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
서흥남동의 낡은 공동우물을 정비하고, 그가 삼학동 산등성이를 따라 뜀박질했던 길을 ‘영웅의 길’로 명명하여 후세에게 알려야 한다.
지자체와 정치권 또한 건물만 짓고 슬럼화되는 전시 행정에서 벗어나, 이런 살아있는 인물의 서사를 지역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실사구시의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
70여 년 전, 보스턴의 기적이 군산의 ‘탁류’ 속에서 피어났듯, 송길윤의 정신을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새만금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진정한 자부심을 세우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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