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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토사 연구가

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향토사 연구가

군산신문2026-04-27 11:22:02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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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부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다. 나에게 조부님은 실체 없는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분의 온기를 찾아볼 길 없던 어린 시절, 선친께서는 제삿날이 돌아오면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시곤 했다.

 

아홉 분이나 되는 형제들이 조부의 제사를 지낸 후 모두 떠나고 나면 집안에 감도는 허전함은 어린 내 몫이 되었다.

 

그런 나를 위해 선친은 밤새도록 조부님의 얼굴을 그려주셨지만, 기억에 의존한 초상화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대학 시절, 선친과 함께 성묘를 마치고 재각(齋閣) 영모당에 들렀을 때였다.

 

선친은 대청마루 벽에 걸린 서각 작품 하나를 가리키며 조부님께서 스물한 살의 기개로 직접 짓고 새긴 ‘영모당기’ 편액이라 하셨다.

 

송판에 새겨진 예쁜 한문 글씨 속에서 마침내 나는 조부님을 만났다.

 

갓을 쓴 모습으로 대청마루에 정좌하신 조부님의 얼굴, 그것은 사진이나 그림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당신의 넋이 서린 ‘글의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왜 그리 고단하게 옛글을 뒤적이고, 남들이 돌보지 않는 묘역의 잡풀을 베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제 그 물음에 당당히 답하려 한다. 고향의 숨결을 지키는 ‘향토사 연구가’로 남은 생을 살기로 했다고 말이다.

 

향토사 연구가의 일은 화려하지 않으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인들을 발굴하고 선양하는 일이야말로 보람찬 일이기 때문이다.

 

향토사 연구가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은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에 참여한 34분 중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던 16분이 모두 서훈을 받게 되었던 일이었다.

 

임피 꽃달메산에 모신 독립유공자 연재 송병선 선생과 의비 공임 할머니의 발자취를 좇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정신적 뿌리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서있을 수 없듯이, 역사를 잊은 고향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 전에, 우리 고향 땅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기록자가 되고 싶다.

 

조부님이 송판에 새긴 서슬 퍼런 ‘글의 얼굴’을 닮아, 나 또한 후세에게 부끄럽지 않은 문장의 이정표를 세울 것이다.

 

채소와 산나물로 제물을 차리듯 소박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나는 옥구 들녘과 금만평야에 서려 있는 이름 없는 의인들의 이야기를 복원해 나갈 것이다.

 

향토사 연구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선조들의 속삭임이 들리고, 해가 지면 역사의 노을이 나를 포근히 감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펜이라는 낫을 들고 우리 고향의 역사를 가로막는 무지와 망각의 잡풀을 베어낼 것이다.

 

이것이 조부님이 손자에게 내려주신 명예로운 직함이며, 내가 독자 여러분께 약속하는 마지막 소임이다. 

 

<외부 연재는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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