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 체계는 시향(詩香)-우아한 동심(童心)이 스민 진실하고 ‘참됨’을 행하는 초월성보다는 정치경제 논리에 의한 외향적인 성과에만 그 시각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사회적 구조에 개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정신적 빈곤의 편향된 사회를 떠올릴 때면 내적 울화로 나만의 회한과 한탄의 사회적 문제를 상기하며 디지털과 로봇의 기계화된 문화생활의 가속화로 탈인간화의 인간관계가 초래됨을 느끼게 됐다.
사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순기능적인 면은 현대인이 누려야 할 특권이나, 그 이면인 정신적 유목민 시대의 슬픈 존재로 살아감을 막기 위해선 어른들이 스마트폰을 어린 자녀에게 들려줌에서 벗어나 동화책을 읽어줘 아이들에게 ’너는 누구냐‘ 함을 떠올릴 기회와 함께 사랑과 관심을 주는 그 과정이 중요할 것이리다.
해서 공감과 경청이라는 절제된 서술과 의도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감응하는 시적인 동화를 접하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한편으론 고귀함과 고결함이 깃들 가정 구조를 깨닫게 해야 하리다.
이와의 고려에서 사회학자 칼라쉬 교수는 건강한 사회의 정의를, 개개인이 생활의 질에 만족을 누릴 수 있고, 문화적인 삶의 질 향상의 안목과 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함에서 아름다운 동심의 생각을 떠올리게 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의미있게 생각하며 품위있고 고귀하며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 즉 어릴 적 기억이 되도록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김춘추 시인의 아름다운 탄생과 퇴장, 그의 문학적 삶의 아름다운 시의 향기가 스민 우아한 삶 곧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한 외침의 시의 꽃향기가 풍성한 시향(詩香)의 동심 세계를 풀어내 그 ‘우아함’을 서원함에서 몇 가지를 제언하는 바이다.
헌데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마치 각자의 섬에 갇혀 사는 듯한 관계로서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다가 착각에 빠져 내 안의 생각만 하면서 헛된 연대를 꿈꾸어 살아온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며, 때론 ‘나도 가족일까를 되물으며 살아가시는 조부모님과는 달리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과 가족이 만날 시간이 부족해 그 삭막함은 이제 일상화가 돼가는 듯함을 어찌하랴.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하나의 놀이처럼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동화‧동시를 읽는 멋진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과 함께 이 결과로 온 어린이에겐 정서적인 안정감과 깊은 자존감을, 조부모에게는 잃어버렸던 동심 생성을 일깨우는 공감을 만들어내 바람직한 가족으로 거듭나 새로운 가족개념이 정립되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여파로 인한 어린이의 맑은 목소리 하며, 만족스러움이 묻어 나는 조부모님의 웃음 가득함, 그리고 부모님의 고운 음성에 낭송 소리 감돌아 생긴 가족 간 조화로움으로 화목한 가정은 더 밝고 벽이 없는 우아한 시향이 넘쳐나게 될 것이리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하나의 문화운동(동화‧동시 읽기)을 전개하게 돼 어느 가정이나 동시‧동화로 책 읽는 소리에 취해 온 마을 주민이 어린이 마음처럼 곱고 순수한 삶에서 완벽한 삶에 이르게 될 이 <글감>에 공감되는 사화화를 떠올려 보며 오래 산다는 건 나이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잃지 않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에 힘써 시향이 넘쳐나는 동심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매 순간 모두는 우아한 동심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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