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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쌀

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군산신문2026-06-02 09:17:38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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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베이비 부머 세대란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60년대에 걸쳐서 태어난 세대를 말하고,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전후 세대를 말한다.

  

영국의 인구학자 맬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농업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과잉인구에 의한 빈곤의 증대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옥구군 서수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난 것은 살인적인 미곡 소작료 수탈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지난해 발표한 시 이엽사 농장을 읊으면서 그때 고향 땅을 빼앗기고 울부짖는 서수 농민들을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을걷이 끝내면/풍요로운 마음이 가득할 때다/다가올 겨울을 대비해/땔감을 구하고 겨울 양식을/마련하는 일만 남았건만/빼앗긴 들에서 뼈 빠지게 농사져/놈들이 걷어 갈 소작료가 두렵구나/수확량의 칠할 오리를 소작료로 내라니/ 소작료 내고 비료대금 운반비/포장비 내고 나면 먹을 게 뭐가 남나/’

  

사할 오리로 낮춰달라 애걸복걸 해보지만/이엽사 왜놈들은 인정사정 안 보네/남은 쌀로 새끼들과 죽 끓여 연명해도/춘궁기를 못 넘기고 굶어야 할 판에/이리 가도 죽고 저리 가도 죽네/참을 수 없도다 이놈들아/어찌 이게 치안법 위반이냐/ 농민조합 간부 장태성 내놔라/농민대표 내놔라/서수농민조합 만세 서수청년회 만세라며 100여 년 전 있었던 옥구농민항일항쟁을 한탄했다.

  

광복이 되고도, 6.25 전쟁을 겪고도 쌀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대야면 어느 마을에는 동냥아치 공동체가 있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한 극빈자들이 모여 살았다. 추수가 끝나면 무임승차로 군산선 첫차를 타고 임피역에 내려 아침 일찍이 동냥을 시작했다.

  

이 동냥아치들은 시골 농가에서 회갑잔치가 있게 되면 이를 용케 알고 줄지어 몰려온다.

  

그러나 이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동냥을 하는 거지였지 도둑질을 일삼는 떼강도는 아니었다.

  

해질녘이 되면 동냥아치는 동냥아치 각시, 동생들과 함께 동냥한 쌀보따리를 메고 군산행 막차를 타고 떠났다.

  

그러나 상이군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더 거칠고 강압적으로 생떼를 부리면서 시골 평야 지대로 동냥을 하러 돌아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칠팔 명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겁을 줘가며 동네를 누볐다.

  

전쟁의 영웅이 되었어야 할 상이군인들이 쇠갈고리 의수에 목발을 집고서 동냥아치가 되어 마을마다 진격을 해온 것이다.

  

그럴 때면 동네는 집집마다 개들이 짖어 대고 난리가 났다. 그때 나는 상이군인이 무섭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상이군인들이 집 마루까지 들이닥치면, 초등학생 누나들은 겨우 취학 연령에 불과한 나를 앞세워 쌀 한 종지를 건네고는 무서워하며 다락에 숨어버렸다.

  

한 종지 더 가져오라고 상이군인들이 무서움을 주면 나는 홀로 쩔쩔매다가, 그들이 사립문을 나설 때야 비로소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어린 나는 그 상이군인들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6.25 전쟁의 영웅인 줄을 미처 몰랐다.

   

<본 수필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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