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지금도 봄바람이 온화하게 불어오는 날이면, 내 가슴 한편에는 은은한 광목저고리 냄새가 실려온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내가 느낀 그 냄새는 남새밭의 싱그러운 풀 비린내와 같았고, 임피역 대합실을 오가며 군산역 새벽장터에서 자식들을 위해 땀 흘리시던 내 어머니의 몸에 밴 시골 냄새와 같았다.
어린 시절, 코흘리개들의 영토는 토방과 마루 아래 나지막한 댓돌 위였다. 그곳에는 늘 올망졸망 벗어놓은 검정고무신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산과 들로 마냥 쏘다니다 보면 발가락 사이사이로 땀이 흥건히 차올랐다. 땀이 차면 고무신 안에서 발바닥이 찌걱찌걱 미끄러졌고, 자갈길을 달리다 보면 고무신 코가 획 돌아가 발가락이 흙바닥에 툭 불거지기도 했다.
그 투박하고 못생긴 검정고무신을 신고도, 우리는 온 세상을 얻은 듯 장쾌하게 산천을 누볐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새벽 화차를 타고 지경 장터에 나가 남새밭 푸성귀 나부랭이를 파신 돈으로 큰맘 먹고 반질반질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사 오셨다.
그때는 그 이름도 눈부신 ‘만월표 고무신’이었다. 보름달처럼 고운 새 신을 얻은 기쁨에 겨워, 때가 묻을세라 차마 댓돌 위에 내어놓지도 못하고 머리맡에 두고 잠들던 기억이 선하다.
이튿날 하굣길에 마을 앞 동자터 시냇가에서 사단이 일어났다. 물결 따라 요리조리 헤엄치는 송사리 떼를 잡는 재미에 넋이 빠져, 고무신 한 짝을 신고서 다른 한 짝에 송사리를 담다가 그만 신고 있던 고무신이 물속에서 벗겨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영혼 같던 검정고무신 한 짝은 이미 물결을 타고 탑천강을 지나 저 멀리 새챙이다리 밑으로 떠내려가고 없었다.
속죄라도 하듯이 점심도 굶고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 해질녘에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남은 고무신 한 짝을 손에 꼭 쥐고, 사립문 밖에서 맨발로 차마 집에 들어서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때,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으러 사립문을 나서던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셨다.
흙먼지투성이에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보고 깜짝 놀라 꼭 안아 주시는 어머니의 “다치지는 않았어, 내 새끼” 하는 한마디에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거칠고 빳빳한 어머니의 광목저고리가 뺨에 닿았을 때, 그 품에서 나던 어머니의 땀 냄새와 온기는 내 평생 느낀 가장 큰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고무신 한 짝을 잃고 가슴을 졸이며 거친 자갈길을 걸어온 자식의 여린 마음을 먼저 보듬어 안으신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자식이 맨발로 학교에 갈까 염려하여, 마루 밑에 보관해 두었던 헌 고무신 한 짝을 꺼내 천을 대고 바늘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꿰매어 신겨 주셨다.
이튿날 나는 새로 꿰맨 짝짝이 고무신을 신고, 뾰족한 자갈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등교했다.
그 서글프고도 애가 탔던 기억이 깊은 흉터처럼 남았던 탓일까. 그날 밤 내 꿈속에서는 잃어버린 ‘만월표 검정고무신’ 한 짝이 둥실둥실 흘러가, 동네 통자터 수멍 속에 얌전히 박혀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마침내 잃어버린 한 짝을 찾았다고 기쁜 잠꼬대를 해댔다.
<본 수필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많이 신고 다닌
유명한 경성 고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