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우 로컬칼럼니스트
전국의 지자체가 ‘메가시티’와 ‘경제공동체’를 외친다. 인구 소멸이라는 벼랑 끝에서 뭉쳐야 산다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지금까지 추진된 지자체 간 공동체 선언 중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얼마나 되나. 거창한 구호와 MOU 사진 촬영이 끝나면 대개 유야무야된다.
이내 행정구역 경계선 싸움과 주도권 갈등이라는 고질병이 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막연하고 느슨한 경제공동체가 가진 치명적인 한계다.
실패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의 한정된 밥그릇을 나누려 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향토 산업을 조율하고 예산과 자치권을 주고받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제로섬 게임이 된다. 이해관계 조율에만 수년의 세월을 허비하다 결국 양손을 턴다. 우리가 해 온 ‘메가시티’의 본질이다.
대안은 없을까. 무거운 행정 통합이라는 옷을 벗어야 한다. 대신 가볍고 강력한 ‘기능적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넓고 모호한 연대보다 명확한 타깃에 집중하는 비즈니스 관점이 필요하다. 그 가장 날카로운 시험대가 바로 ‘새만금 신재생에너지&AI 경제 공동체’ 모델이다.
새만금은 군산, 김제, 부안이라는 3개 지자체가 복잡하게 얽힌 공간이다. 이곳에서 “세 도시가 하나 되어 번영하자” 같은 온정주의적 슬로건은 안 먹힌다.
오히려 ‘신재생에너지와 AI’라는 미래 먹거리에 집중해 타깃형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파괴력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갈등을 유발하는 기존 산업이 아니라,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챗GPT로 촉발된 AI 시대에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최대 고민은 ‘막대한 전력 소모’와 ‘탄소 배출’이다.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돌릴 청정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은 이제 기업의 생존 과제다.
여기서 새만금은 독보적인 치트키를 쥐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넓고 저렴한 부지가 있다. 여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육상 태양광과 해상 풍력 인프라까지 갖췄다. 기업이 호감을 느끼고 제 발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환경이다.
말로만 뭉치는 공동체는 쉽게 깨진다. 하지만 거대 앵커 기업이 중심축으로 박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동체는 반강제적이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약 9조 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 수소 플랜트, 로봇 클러스터를 아우르는 ‘AI 수소 시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지자체 간의 명분 싸움이 아닌, 대기업 주도의 실질적인 생태계가 짜인 셈이다.
타깃형 공동체는 마케팅과 정책 지원 측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지자체끼리 연합하겠다”는 모호한 브랜딩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저렴하게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특구”라는 메시지가 글로벌 자본을 유인하기 훨씬 쉽다.
정부 입장에서도 전 지역을 다 밀어주기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국가 전략 산업인 AI와 에너지 안보’라는 명분이 확실하면 예타 면제나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 규제 프리존 특례를 과감하게 밀어줄 수 있다.
물론 과제는 남는다. 범위를 좁혀도 인간의 이해관계는 남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핵심 시설들이 3개 시·군 중 ‘정확히 어느 행정구역 땅 위에 지어질 것인가’를 두고 지자체장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일 여지가 다분하다.
또한 에너지 판매와 데이터센터 운영으로 거둬들일 세수와 이익 공유 펀드의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초기에 칼같이 계량화해 두지 않으면, 사업이 궤도에 오른 뒤 다시 흔들릴 수 있다.
핵심은 ‘이익 공유의 제도적 안착’이다. 지자체 간의 느슨한 선언적 연대를 넘어, 철저하게 비즈니스 협약에 기반한 수익 분배 공식과 상생 헌장을 초기에 수립해야 한다.
땅의 경계선을 두고 싸우기보다 전체 파이를 키워 실리적으로 나누는 구조를 만드는 ‘대타협’이 핵심이다.
이제 전술한 느슨한 경제공동체의 한계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지루한 정치 싸움에 에너지를 낭비하기엔 남은 시간이 없다.
새만금의 ‘신재생에너지&AI 밸리’처럼, 명확한 킬러 콘텐츠를 중심으로 뭉치는 현실적인 기능적 공동체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밀린 속도를 만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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