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잊힐 만하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단골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새만금 내국인 출입 카지노 유치’주장이다.
광역단체장이 취임할 때마다, 혹은 민간 자본 유치가 난항을 겪거나 개발 속도가 더딜 때마다 일부 정치권과 개발업자들은 마치 카지노와 복합리조트만 들어서면 수조 원의 투자 유치가 새만금에 쇄도한다는 듯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미국 캘리포니아를 여행 다녀와서 아무것도 없던 네바다주의 황무지 사막에 들어선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와 리노를 이야기한다.
24시간 카지노장에서 터지는 잭팟과 아름다운 미희가 공짜로 서비스하는 양주, 불빛의 현란함을 보고 와서 새만금도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만들자고 건드려 보지만 이는 명백한 환상이다.
새만금 카지노 계획은 새만금의 지리적·제도적 맥락을 간과한 비약이자, 지역의 미래를 사행성 자본에 내맡기려는 위험하고도 저급한 ‘나쁜 환상’에 불과하다.
우선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도박을 합법화했던 네바다주의 사막과, 동북아 해양 물류와 첨단 산업의 거점으로 메워진 새만금은 그 출발점부터가 전혀 다르다. 어찌 사막 도시와 약속의 땅 새만금 옥토를 비교한단 말인가.
거대한 자본과 관광객이 쏠리는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사회적 폐해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가져올 도박 중독, 범죄율 증가, 가계 파탄이라는 잔혹한 사회적 비용은 단기적인 세수 수입이나 일자리 창출 효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거대 글로벌 자본이나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복합리조트의 막대한 수익은 정작 외지로 유출되고, 지역사회에는 ‘새만금 도박 도시’라는 불명예와 사회적 수습 비용만 고스란히 남아 삶의 터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미 ‘폐광지역 개발 지원’이라는 고유한 목적 아래 세워진 강원랜드의 사례에서 사행 산업이 가져오는 지역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충분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품격’에 있다. 군산과 김제, 부안으로 이어지는 새만금 주변 터전은 예부터 풍부한 인문학적 자산과 역사, 그리고 정갈한 자연 생태를 품어온 고귀한 땅이다.
이 거대한 미래의 도화지 위에 친환경 첨단 산업과 지속 가능한 생태·문화 관광 대신 ‘도박장’의 휘황찬란한 조명을 켜겠다는 것은 지역의 역사성과 가치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일이다.
혹자는 지역 대학에 카지노 학과를 개설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사행성 자본에 기대어 일군 성장은 단단한 토대가 될 수 없다. 개발의 느린 걸음이 답답하다고 해서 독약이 든 성배를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사막 도시의 ‘나쁜 환상’에서 벗어나자. 정직한 첨단 산업의 유치와 생태·역사의 보존이라는 본래의 건강한 비전 위에서 새만금의 미래를 채워나가야 한다.
헛된 환상을 깨고 진정한 지역의 존엄을 지켜내는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개발 자본이 급할 때는 복합리조트·카지노를 만병통치약처럼 꺼내 들었다가, 사회적 반발과 법적 한계에 부딪히면 다시 신중론으로 돌아아서는 과정이 매번 반복되어 왔다.
전북의 투자 유치가 다소 늦더라도 초조해하지 말자. ‘나쁜 환상’이 도정의 지표인 양 흔들려서는 안 된다.
1930년대 한 잡지사가 문화계 인사들에게 “제주도를 선생께 드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앙케트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가장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응답이 채만식 선생의 “노형이나 가지시오”였다. 나는 꿈속에서라도 선생을 뵙게 된다면 “선생님, 오늘날 이 불의한 시대에 새만금을 드린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아뢰고 싶다.
그러면 선생은 금방이라도 환생해 내항을 거닐며 이렇게 힐난하실 것만 같다. “이 신통치 않은 껍데기만 남은 새만금을 내게 주면 무엇에 쓰겄소! 안방에 앉아 제 항만 이름과 바다마저 도둑맞고 있당게. 군산항의 역사성도 수성 못하는 방안퉁소들에게 주면 뭐허겄소. 차라리 그 못된 놈들에게나 모두 줘버리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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